백야 Poem by Kim Hyesoon

백야

- 닷새

네가 답장할 수 없는 곳에서 편지가 오리라

네가 이미 여기 있다고
네가 이미 너를 떠났다고

모든 것을 알고 있는 구멍, 저 푸른 하늘처럼 밝은 편지가 오리라

죽어서 모두 환하게 알게 된 사람의 뇌처럼 밝은 편지가 오리라
네 탄생 전의 날들처럼 어제도 없고 내일도 없는 넓고 넓은 편지가 오리라

빛으로 만든 마차의 방울소리 고즈넉이 울리고
빛으로 만든 바지를 입은 소녀의 까르르 웃음소리 밤 없는 세상을 두드리는

마지막 지하철이 지상으로 올라가고
플랫폼의 기차들이 일제히 불을 켠 채 말없이 너를 잊어 주는 세상

너는 발이 없어 못가지만 네 아이적 아이들은 이미 거기 가 있는
네 검은 글씨에 검은 글씨로 답장조차 할 수 없는 그 밝은 구멍에서 편지가 오리


네 아이들이 네 앞에서 나이를 먹고
너 먼저 윤회하러 떠나버린 그곳에서

밝고 밝은 빛의 잉크로 찍어 쓴 편지가 오리라

이 세상에 태어나 한번도 어둠을 맞아 본 적이 없는 그곳에서
지금 막 태어난 아기가 첫 눈 뜨고 마주한 찬란 빛 세상처럼
커다랗고 커다란 편지가 오리라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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